과감한 투자와 뚝심 일관 ‘20조원대 부자’ 오른 사업 천재
과감한 투자와 뚝심 일관 ‘20조원대 부자’ 오른 사업 천재
  • 한상오 기자
  • 승인 2015.03.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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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동양의 빌 게이츠’에 이어 ‘아시아의 워런 버핏’까지. 그를 묘사하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투자하는 곳마다 연이어 ‘대박’ 신화를 써가는 일본 국적의 한국계 3세 경영인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이제 그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무일푼으로 출발해 오늘의 큰 성과를 이룬 손정의 회장의 사업비결은 무엇일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미국 통신업계 4위인 T모바일 인수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3위 통신사 스프린트를 인수한 데 이어 그는 ‘통신제국’을 향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스프린트가 부채를 포함해 500억 달러에 T모바일을 인수하는 방안이 곧 합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프린트는 현재 T모바일 모회사인 도이체텔레콤과 최종협상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액 중 절반은 현금으로 지급한다.

스프린트와 T모바일이 합병하면 미국 통신시장은 재편될 수밖에 없다. 현재 스프린트 가입자 5000만 명과 T모바일 가입자 4700만 명이 합쳐진다면 업계 1위인 버라이존의 1억 명을 턱밑까지 바짝 뒤쫓게 된다. 업계 2위인 AT&T의 가입자 7000만 명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명실상부한 ‘3강구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부터 T모바일을 주목해 왔다. 스프린트와 합쳐 미국 통신시장을 3강 구도로 재편하려는 의도였다. 그는 지난 2월 “스프린트는 미국시장 3위 이동통신사이나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며 “또 다른 미국기업을 인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스프린트와 T모바일을 합병해야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공영방송 PBS 토크쇼에서 “T모바일 인수가 승인되면 미국 1위와 2위 이동통신사와 경쟁을 벌여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무선인터넷의) 느린 속도를 비싼 값에 판다”며 “소프트뱅크는 가짜경쟁이 아니라 진짜경쟁을 벌여 가격을 낮추겠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손 회장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반대로 T모바일 인수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 FCC는 반독점법 위반 가능성을 우려해 스프린트가 T모바일을 인수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 AT&T가 위성방송 시장 1위 기업 디렉티비를 485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밝히면서 희망이 생겼다. 블룸버그통신은 AT&T의 인수합병으로 손 회장이 연방통신위를 설득할 명분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손 회장은 대규모 채권 매각으로 T모바일 인수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소프트뱅크는 2014년 회계연도에 발생하는 매출채권 중 3800억 엔을 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동기 대비 15% 증가한 양이다. 일본 언론들은 소프트뱅크가 T모바일 인수에 나서면서 대규모 자금 수혈이 필요해 채권매각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타고난 천재이니 뭐든지 다할 수 있다”


손 회장은 일본 최고의 부자다. 포브스가 발표한 ‘2014 세계 억만장자’에서 세계 42번째로 꼽혔다. 그의 재산은 우리 돈으로 20조 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재산 11조 원의 2배 가량 된다.
하지만 손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시작이 달랐다. 선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적수공권, 그야말로 무일푼으로 출발했다. 손 회장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탄광노동자로 일본에 건너갔고 대부분의 재일교포가 그렇듯 어렵게 살았다. 손 회장의 아버지는 중학교 졸업 후 생선행상으로 출발해 나중에 음식점과 파친코 가게를 운영했다.
빈민가 출신 재일교포 3세인 손 회장이 일본 최고부자가 된 여정은 드라마틱하다. 그는 24살에 소프트웨어 유통회사 소프트뱅크를 창업해 4년 만에 시장의 60%를 차지했다. 어느 잡지도 소프트뱅크 광고를 실어주지 않자 직접 잡지를 창간해 3년 만에 최다 부수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는 2001년 초고속인터넷사업에 뛰어들었다. 매년 1조 원이 넘는 적자로 고전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계속해 4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 이듬해 소프트뱅크 시가총액은 20조 원을 돌파했고 손 회장은 일본 최고 부자의 자리에 올랐다.
‘손정의’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 손삼헌이 정의롭게 살라는 의미로 지어주었다. 그런데 손 회장의 아버지는 매우 특별한 교육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천재 교육법인데 손삼헌은 손 회장에게 “너는 타고난 천재이니 무엇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다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은 그는 어느덧 무슨 일이든지 자신감이 넘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무모한 도전을 하고 이를 성취하는데 묘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손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다. 유치원 시절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아이가 큰 소리로 조센징이라고 놀리고는 큰 돌을 던졌는데 그가 이 돌에 맞아서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최대한 자신이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미국 연수를 가기 위해 공항에서 출국심사를 하는 중에 자신이 재일교포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친구들은 내국인 심사를 하였는데 자신만 외국인심사를 통해 출국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손 회장에게 미국은 신세계였다. 그가 방문한 버클리 대학에는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거기에서는 일본인인지 미국인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문화와 버클리 대학에 반한 손정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에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말한다. 처음에 그의 아버지는 적극 반대하지만 그 누구도 손정의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손 회장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버클리대학교를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백수로 지내며 1년 6개월 동안 시장조사한 끝에 앞으로 일본에 개인용 컴퓨터가 대중화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래서 1981년 소프트웨어 유통회사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남들이 미쳤다고 할 정도의 사업 집념

손 회장은 창업 뒤 일본 내 가맹점을 늘리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미국을 방문해 빌 게이츠를 여러 번 만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독점 판매권을 따냈다. 소프트뱅크는 빠르게 성장했고 창업 4년 만에 소프트웨어 시장의 60%를 점유했다. 소프트뱅크는 1994년 기업을 공개했고 단숨에 2000억 엔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끝없이 오를 것 같던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2000년 3월 100분의 1 토막이 났다. 세계적으로 인터넷 거품이 꺼지던 시기였다. 70조 원이 넘던 손 회장의 재산도 1조 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소프트뱅크 주식 보유자들은 손 회장을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손 회장은 위기를 돌파할 방법으로 일본에 초고속인터넷을 도입했다. 이는 당시 일본 최대 IT기업인 NTT와 경쟁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회사 내부의 반대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손 회장은 곧바로 연구에 들어가 2001년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발표했다. 한 달 이용료는 기존 인터넷의 1/8 수준인 990엔으로 책정했다.
손 회장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봤다. 이때 손 회장은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다들 나보고 미쳤다고 한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소프트뱅크는 곧 파산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세상을 본다. 이 사업은 성공한다.”
하지만 회선이 문제였다. 회선을 일본 전 지역에 새로 설치하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NTT의 인프라를 임대할 수밖에 없었다. 법에 따라 신규회사를 도와야 할 NTT는 경쟁자를 돕기 싫어했다. 손 회장은 정부 당국에 달려가 분신자살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총무성 당신들이 NTT에 똑바로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내 몸에 석유를 끼얹고 내 손으로 불을 지르겠다”고 소리쳤다. 정부 당국자는 기겁해 NTT에 회선을 임대해주라고 지시했다. 손 회장은 가까스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손 회장은 하루 18시간을 일에 매진했다. 손 회장은 “내가 누군가에게 3시에 보자고 말하면 그건 꼭 오후 3시가 아닐 수도 있었다”며 “새벽 3시에도 회의를 소집했고 필요하면 언제든 밤을 새웠다”고 술회했다. 사무실에 온통 직원들의 땀 냄새와 며칠 동안 목욕을 못한 손 회장의 시큼한 냄새가 가득했다.
이렇게 초고속 인터넷사업에 몰두했지만 매년 1천억 엔씩 적자가 났다. 하지만 손 회장은 야후 주식 등 자산을 다 내다팔면서 4년 동안 흔들림 없이 사업을 밀어 붙였다. 이 과정에서 10년 넘게 손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재무책임자가 회사를 떠났다. 미래가 불확실한 초고속인터넷에 올인 하느라 회사 재무 상태를 심각하게 만든 데 대한 반감이었다.
소프트뱅크의 초고속인터넷은 2005년 드디어 첫 흑자를 달성했다. 그 이듬해 소프트뱅크의 시가총액은 주가가 최저점을 찍었던 6년 전보다 10배 넘게 상승해 20조 원을 다시 돌파했다. 손 회장은 일본 최고부자 자리에 올라 화려하게 재기했다.

 ‘될 것 같은 기업’ 알아보는 천재적 재능

손 회장이 재산을 일군 첫 번째 방식이 사업 도전이라면 두 번째 방법은 주식투자다. 손 회장은 ‘될 것 같은’ 기업을 알아보는 데 천재적 재능을 발휘했다. IT기술을 전혀 모르는 전직 영어교사가 시작한 전자상거래사업에 손 회장은 204억 원을 투자했다. 이 돈은 14년 후 3000배로 불어났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는 최근 미국증시 상장을 위한 신청서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알리바바가 상장할 경우 150억~200억 달러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저널은 알리바바가 비자카드(197억 달러)를 제치고 미 증시 사상 가장 많은 자금을 끌어 모을 것이라고 점쳤다.
이 상장으로 ‘잭팟’이 터질 사람은 알리바바CEO 마윈만이 아니다. 어쩌면 손 회장이 더 큰  ‘돈벼락’을 맞는다. 그는 알리바바 지분 34.4%를 보유하고 있다. 손 회장은 14년 전 알리바바의 지분을 2000만 달러에 샀다. 그리고 그 지분은 현재 578억 달러로 불어났다. 아직 알리바바의 상장 전인데도 3000배의 수익이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즈와 블룸버그통신은 손 회장이 알리바바 미국증시 상장의 최대승자가 됐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알리바바가 기업을 공개하면 손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영리한 투자자 중 하나로 올라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투자를 원하는 기업을 초청해 아이디어를 듣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해왔다. 이 행사를 통해 손 회장은 2000년 알리바바의 마윈을 만났다. 마윈은 “중국 소상공인을 세계 모든 소비자와 연결하겠다”는 목표로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마윈과 손 회장이 만난 것은 알리바바 창업 1년 뒤였다.
마윈은 IT기술을 전혀 모르는 평범한 영어교사 출신이었다. 알리바바의 직원은 20여 명이 전부였다. 그러나 손 회장은 마윈의 브리핑을 들은 지 6분 만에 투자결정을 내리고 알리바바의 최대주주가 됐다.  손 회장은 당시 마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마윈은 영웅이 될 것이다. 그는 야후의 창업자인 제리 양이나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빌 게이츠와 같은 영웅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안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의 예언은 곧 현실이 되었다. 알리바바는 창업 7년 만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으로 우뚝 섰다. 손 회장의 투자 감각은 그 이전에도 빛을 발했다. 손 회장은 1995년 야후의 최대주주가 됐다. 야후는 손 회장이 투자할 만한 벤처기업을 찾던 중 발견한 신생회사였다. 야후의 검색엔진은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고 있었다. 손 회장은 야후에 관한 소식을 듣자마자 야후가 있는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당시 야후는 창업한 지 반 년밖에 안 된 상태였다. 직원도 15명에 불과했다. 매출 200만 달러에 적자가 100만 달러였다. 알리바바와 마찬가지로 미래가 불확실한 벤처기업이었다. 손 회장은 27살의 야후 CEO 제리 양을 만나 피자와 콜라를 먹으며 얘기를 들은 뒤 성공을 확신했다. 그는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야후 지분 35%를 확보했다. 야후재팬의 운영권도 따냈다. 미국은 당시 IT주식 거품으로 주식시장이 과열양상을 보이는 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손 회장이 거액을 투자하자 미국 언론은 그를 ‘일본에서 온 마지막 거품’이라고 조롱했다.
그런 조롱은 곧 무색해졌다. 제리 양은 학생에서 사업가로 변신에 성공했고, 야후는 나스닥에 상장해 승승장구했다. 일본에 세운 야후재팬도 큰 인기를 끌어 설립 2년도 안 돼 기업을 공개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야후의 인기가 치솟은 덕분에 2000년 손 회장의 재산은 78조 원에 이르렀다. 비록 3일 동안이지만 손 회장이 빌게이츠의 재산을 넘기도 했다. 손 회장은 지금까지 1300여 IT기업에 투자했다. 손 회장은 이 많은 투자를 하면서 한 번도 적대적 인수합병을 한 적이 없다. 손 회장은 알리바바 지분 34.4%를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에 간섭하지 않고 고문 역할만 해 왔다. 야후의 최대주주가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손 회장은 이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다음 목표는 도요타 제치고 일본 1위 기업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다음 목표를 정했다. 그는 도요타 자동차를 따라잡겠다고 토요타를 지목했다.  그는 “우리는 결코 2위, 3위에 만족하는 회사가 아니다”라고 말을 더했다.
손 회장은 최근 소프트뱅크가 일본 이동통신 1위에 오른 것을 발표한 자리에서 이런 목표를 내놓았다. 손 회장이 도요타 자동차를 다음 목표로 삼은 것은 자동차사업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도요타 자동차가 일본 1위 기업인만큼 소프트뱅크를 앞으로 1위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밝힌 것이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 1조853억 엔을 거둬 1조 엔을 넘겼다. 매출도 6조6666억 엔을 올렸다. 영업이익과 매출 양쪽에서 일본 최대 통신회사인 NTT도코모를 확실히 눌렀다.
손 회장은 이런 실적을 앞세워 이동통신업계 1위에 올랐으니 이제 일본기업 1위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손 회장은 “영업이익이 1조 엔을 넘어선 기업은 일본 내에서 도요타 자동차, 소프트뱅크, NTT그룹 3개 회사밖에 없다”며 “소프트뱅크는 1조 엔 도달 기간이 33년으로 가장 짧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의 도요타 따라잡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 손 회장은 2006년 일본 3위 이동통신회사 ‘보다폰 재팬’을 인수할 때 “10년 안에 일본 1위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손 회장이 이런 약속을 하자 언론은 손 회장이 미쳤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보다폰 재팬은 당시 업계 3위였지만 1~2위와 많은 차이가 났다. 가입자가 한참 모자랐고 통화품질도 뒤졌다. 손 회장은 당시 1조8000억 엔의 인수자금을 동원했는데 이는 일본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당시 손 회장은 10조 원이 넘는 돈을 은행에서 빌리는 바람에 분기마다 일정수익을 내지 못하면 경영권을 내놓는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그러나 손 회장은 10년도 되기 전에 이 약속을 지켰다. 손 회장은 보다폰 재팬 인수 이후 파격적 요금혜택을 제공했다. 또 아이폰을 일본에서 가장 먼저 도입해 마침내 1위의 목표를 달성했다. 이 때문에 손 회장이 도요타 자동차를 따라잡겠다고 했을 때 손 회장이 미쳤다는 식의 보도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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