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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을 읽어라”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을 읽어라”
  • 박기환 전문위원 겸 에머슨케이파트너스 대표
  • 승인 2015.02.09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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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환의 커뮤니케이션 경영전략] 과학적 여론조사 선구자 '조지갤럽'

키아누 리브스, 알 파치노, 사를리즈 테론 등이 출연한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 Devil's Advocate, 1997>은 통계의 기본 원리와 허실, 미국 사법제도의 허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도시의 변호사에 불과하지만 재판에서 연전연승하며 주가를 올리던 변호사 케빈 로막스(키아누 리브스)에게 어느 날 뉴욕의 큰 로펌에서 고액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그는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뒤 맞이한 첫 재판에서 내심 고객이 유죄라고 생각하지만 멋진 솜씨를 발휘해 무죄로 만는다. 배심원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것인데, 무작위로 차출된 배심원들을 세밀하게 관찰한 뒤 유죄를 선고하거나 불리한 의견을 제시할 만한 인물을 배심원 기피 신청을 통해 제외시켜 나가는 것이다.

영화에서 피고에게 불리한 배심원을 제외시키는 과정은 사법제도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이자 여론조사가 빠질 수 있는 허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배심원은 전체 시민(여론조사 모집단)의 의견을 대표하는 사람(여론조사 표본)들로, 배심원 제도는 전체 시민의 의견을 일부 시민의 판단을 통해 결정하는 미국 사법제도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다. 또한 전체를 대표하는 일부(의 의견)를 통해 전체(의 의견)를 판단하는 것은 통계의 중요한 원리이자 여론 조사의 기본 원리다. 
여론 조사는 모집단(Population) 가운데 일부인 표본(Sample)을 택하여 전체가 어떠하리라는 추측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조지 갤럽이 <데블스 에드버킷>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이 대목에서 여론조사(Public Opinion Pull)의 개척자로서 여론조사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윤리적 원칙, 즉 독립성(Independence)과 객관성(Objectivity)을 앞세워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부 국가를 제외한 많은 나라가 대외적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대중에 의한 지배’를 뜻하며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양대 기둥, 법치주의(Constitutionalism)와 여론(Public Opinion)이 각각 그 형식과 내용을 맡고 있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헌법 제 1조는 모두 2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많은 국가에서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 받은 정부와 정치인들이 말끝마다 ‘국민의 뜻’을 앞세워 나라를 통치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며 ‘국민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을 억압한다. 
선거기간을 제외하고 누가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누가 이들의 목소리가 전체 국민의 의지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어쩌면 조지 갤럽은 이런 의문에 대해 가장 정확한 답은 아닐지라도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방법을 제시한 인물일 것이다.

대공황 이후 마케팅·광고 리서치 전문가로

조지 갤럽은 아이오와 주립대학에 입학해 저널리즘을 공부했고, 1932년 뉴욕의 유명한 광고회사 영앤루비컴의 시장광고조사 담당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광고·마케팅 담당자들은 좀 더 적은 비용을 들여 더 나은 판매 실적을 올릴 수 있는 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대중의 기억에 제품의 이미지를 좀 더 강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커다란 관심이 있었다. 

영앤루비컴의 마케팅·광고 분야 리서치 책임자가 된 갤럽은 직접 고안한 여러 가지 방법을 현장에서 응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당시 개발된 조사 기법은 오늘날에도 마케팅, 광고, 미디어 및 시청자 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갤럽은 텔레비전, 라디오 등 방송매체와 신문, 잡지 등 인쇄매체의 광고를 접한 소비자가 어떤 광고를 더 오랫동안 기억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최초로 전국적 규모의 라디오 청취자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때 자신이 고안한 동시 방법(Coincidental Method)을 이용했다. 동시방법이란 현재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의 시청률 조사를 위해 사용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방송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전화 등을 통해 청취자에게 직접 묻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방송이 끝난 뒤 물어보는, 청취자의 기억에 의존하는 회상법(Recall Method)에 비해 즉각적이고 정확도가 높았다. 또한 임팩트 기법(Impact Method)도 만들어 냈는데, 텔레비전과 인쇄물의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이 방식 역시 현재까지 널리 쓰이는 카피 테스트 과정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광고 직후에 매체와 광고에 대해 질문하고 24시간 뒤에 그 광고가 재노출된 수치를 광고 직후의 수치와 비교하는 방식이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한 갤럽은 1937년 교수직을 사임하고 영앤루비컴의 부사장이 되어 1947년까지 일했다. 1935년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 미국 여론조사연구소(American Institute of Public Opinion)를 설립했고, 1939년엔 청취자여론조사연구소(Audience Research Institute)를 설립하는 등 여론조사의 이론과 방법론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두 연구소는 조지 갤럽이 1958년에 설립한 갤럽 연구소(Gallup Organization)와 함께 그가 세상을 떠난 1984년까지 계속 새로운 여론조사 방식과 조사 방법론을 연구한 곳이다.

“미래 예측은 과학의 영역”

조지 갤럽은 청취자여론조사연구소 운영을 위해 영국 출신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를 고용했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을 중퇴하고 광고회사에 취직했지만 좀 더 발전된 광고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신출내기 광고인이었다. 갤럽은 그에게 자신이 터득한 조사 분석 기법을 비롯해 많은 것을 가르쳤고, 오길비 역시 갤럽의 조사 분석이 필요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1940년대 미국 영화산업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수요(관객)를 예측할 수 없는 모험산업이었다. 갤럽은 할리우드 영화사를 위한 조사 분석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데이비드 셀즈닉(David O. Selznic), 월트 디즈니(Walt  Disney), 새뮤엘 골드윈(Samuel Goldwin) 등 내로라 하는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갤럽의 조사 분석 프로그램을 도입해 영화의 스토리 아이디어가 대중에게 어떤 반응을 얻어낼지, 스타들의 흥행실적이 어떨지, 영화가 대중 속으로 얼마나 파고 들었는지, 시사회 반응 등을 측정해 영화의 흥행 가능성과 수익률을 예측할 수 있었다. 
실제로 골드윈이 제작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 The Best Years of Our Lives, 1946>는 갤럽에 의해 가장 많은 조사 분석을 거친 영화 가운데 하나로, 그 해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한동안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영화가 되었다.
미래 예측을 점쟁이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옮긴 조지 갤럽은 말년에 이르러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고, 수많은 연구자와 정치인, 경영자의 조언자로서 정신적 스승(Guru)으로 자리 잡았다. 조지 갤럽은 1984년 7월 26일 스위스 츄쉰겔(Tschingel)에서 휴가를 보내다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갤럽은 꾸준히 성장해 100여 개국 이상에서 다양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세계 최고 여론조사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 박기환 ㈜에머슨 케이 파트너스 대표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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