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 인사이트코리아
  • 승인 2015.02.0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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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문희의 여행 에세이 ]중국 내몽고, 후룬베이얼 대초원

길은 끝이 없었고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망망한 바다에 홀로 뜬 섬처럼
그 때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었다.  
짧은 내 앞머리를 파르르 흔들다 서늘하게 눈썹을 스쳐 귀 뒤로 흘러갔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망망 대초원에서 서성이던 내가 있었다. 

중국 내몽고 자치구, 후룬베이얼 대초원.   
칭기즈 칸의 어머니가 태어났고 몽골 지역을 통틀어 가장 비옥한 땅.   
남북한을 합친 것 보다 넓다는 대초원지대는
일망무제(一望無際) 바다처럼 넓고 푸르다.  
그 곳에 가면 오로지 길게 누운 대지의 장엄함을 보리라.  
마음은 아마도 보이는 풍경만큼 넓어질테지.
몽골 초원에 간다 하니 사람들의 부러움도 한결 같았다.  
넓고 광대한 초원은 보편적 그리움인 듯 그러했다.

초원에 도착한 다음날 해 뜨자 마자 나섰다. 
그냥 걸었다는 표현이 맞다. 
다시 돌아가지 않을 사람처럼 그냥 씩씩하게 걸었다. 

처음.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은 없었다.  
보이는 것은 하늘과 초원, 오직 그 뿐.  
모든 소음과 잡다한 이미지를 걷어버린 날 것의 풍경. 
감격했다는 말은 부족하다. 

그렇게 길게 걷다보니 참 많은 생각이 났다. 
그랬다. 참 많은 생각. 
나는 완전히 잊혀졌던 얼굴까지 낱낱히 기억하며 걷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잠시 두려웠다.
멀리서 먹구름 비기둥이 달려왔다.
비가 떼지어 오는 걸 보고도 방법이 없었다.
숨을 곳이 없는 이 곳.
나는 몸을 웅크리고 그 비를 다 맞았다.
비는 금방 지나갔지만 나는 서러웠다.
어디로 걷는지 알 수 없었다.
길은 끝이 없었고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더 걸었다. 그래도 길은 끝나지 않았다.
풍경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광활 하다는 건 막막한 것과 닮아 있었다? 
그늘도 없고  
손에 잡히는 나무 하나 없고  
눈에 밟히는 다른 광경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문득 뒤를 돌아보면   
아무리- 열심히- 멀리- 최선을 다 해 걸어도  
내가 출발했던 그 자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알았다.  

너무 넓은, 아무것도 없는, 갈 데 없는…  
설핏 내가 느낀 절망은
보이는 모든 것이 길이라는데 있었다.    
너무 넓은 길은 길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  

가방을 던져놓고 멈춰 섰다. 
더는 갈 수 없어서 눈을 감았다. 
먹먹했다. 숨 쉬기 어렵게 먹먹했다. 

그때.
달궈진 내 이마에 무언가 
닿을 듯 머문 것이 있었다.
바람.
바람이었다. 

그때 그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너무도 그리웠던 사람을 
낯설고 무서운 곳에서 만난 반가움이라 해야 하나?
반가워서 서러웠다 해야 하나?  
눈물이 났다.
홀로 나를 지켜보다 문득 연민에 들었던 것일까. 
바람은 그냥 바람만이 아니었다.

바람이 흔든 건 내 머리칼 아니라 마음.
그리고 또 마음.
울며 기다린 이 언덕에 파도처럼 출렁이는 
망망한 바다에 홀로 뜬 섬처럼
내가 웁니다. 그 때 바람이 붑니다.

내 마음을 흔든 바람 이야기를 하자니,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어렵다.  
그 날 그 길에서 느낀 절망감을 그냥 둘 수 없어  
나는 기어이 그 자리에 다시 가야 했다.  
그렇게 지난 해 나는 세 번 몽골 초원을 다녀왔다.   
‘다녀와야 했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떠나기 전에 나를 설레게 했던 온갖 기대는 다 무너졌고
나는 절망감 비슷한 어떤 것만 보고 왔다. 
하지만 내 모든 여행을 통해 가장 값진 순간은 그때 였다.
결국 여행이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일이라 했다.

그 바람 한 바퀴 지구를 다 돌고난 시간 즈음 
이렇게 다시 그 바람을 적는다. 
내게 왔던 바람. 
그 바람은 단지 바람만은 아니었다. 
                                                        

 

 


엄문희 여행작가/미술치료사

여행이란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고 생각하는 여자사람.
그림 그리는 작가. 미술치료사. 여행가의 정체성 모두를 사랑한다.
여행의 치유력에 관한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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