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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25 09:58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내가 '꿈'을 꾸는지, '욕심'을 꾸는지 들여다본다면…
내가 '꿈'을 꾸는지, '욕심'을 꾸는지 들여다본다면…
  • 인사이트코리아
  • 승인 2015.01.29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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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의 Communication&Coach] 꿈 vs 욕심
▲ 김혜영 커뮤니케이션 코치

코치로서 활동을 한 지 6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진행했던 코칭세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코칭의 씨줄과 날줄이 겹겹이 쌓일 때마다 간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커뮤니케이션 코치로서 ‘나 자신 돌아보기’를 게을러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데 있어서의 기준점은 5년 전 가졌던 코치로서의 ‘처음마음’과 코칭의 ‘처음고객’이다. 

2009년 11월, 코칭 전문가과정을 수료하는 기쁨을 처음으로 맛 봤다. 하지만 코치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서 고객이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와 주지는 않았다. 그때만 해도 내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엘리트라는 착각에 빠져 있던 터라 코치자격만 주어지면 고객들이 몰려들 것이라는 자만에 쌓여 있었다. 하지만 나의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콧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보기 좋게 곤두박질 쳤다.  
2010년 1월 어느 날, 한 고객이 나에게 코칭을 의뢰했다. 나는 코칭 세션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적정선의 코칭비를 제안하며 계약을 진행시켰다. 하지만 고객은 다음 기회에 계약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하며 나에게 한마디 했다. 
“코치님은 지금 실력도 검증되지 않았고, 국제공인 코치자격증도 아닌데 무슨 코칭비를 받고 코칭하세요? 요즘 상담은 무료도 많던데요…” 
“저는 공식 코치 전문가과정을 이수했고, 좋은 대학의 석사학위를 소지했습니다.” 
“학위가 제 삶을 바꿔주는 무슨 능력이 있나요? 전문가과정을 이수하신 것이지 전문가로서 경력은 없으신 것 같아서 믿음이 안가네요…”

진정한 코칭과 코칭 대상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때 고객에게 제시한 코칭비는 한 세션당 3만원이었고, 3개월을 주 1회 코칭하는 조건으로 30만원의 비용을 제안했다. 3개월이면 12주 과정이므로 36만원의 코칭비를 책정해야 했지만 30만원까지로 제안했다. 나 정도의 능력선에서는 아주 배려한 비용이었다. 
그런데 그 고객은 코칭비용이 너무 비싸며, 내가 코치로서 신뢰가 가지 않아 당신의 인생을 다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로인해 첫 코칭계약은 무산이 되었다. 그 고객의 한마디는 비용의 문제 뿐 아니라 나 자신의 코치 자세에 대한 한마디였었다. 
당시에 나는 코치전문가과정을 이수하기만 하면 전문가로 인정받는 줄 알았고, 석사학위를 대단한 학벌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을 겪은 후, 코치전문가 과정은 전문가가 되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고, 석사학위는 그냥 학벌인 것이지 코치로서의 내 가치를 입증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코치로서 나 자신은 전혀 성찰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코칭 전문가로서 뭔가를 하려고만 하였지 코치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깊이 있는 성찰을 하려고는 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진정한 코치로서는 전혀 준비된 것이 없었던 셈이다. 그렇게 코치로서의 ‘처음마음’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을 때쯤, 지인이 나에게 자신의 친구를 코칭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건네는 말은 그 친구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으며, 지난달에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코칭비용은 전혀 줄 수가 없고, 그 친구는 대인기피가 심각하여 어떤 상담센터나 정신과도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면초가였다. 코치윤리강령에 따르면, 코칭은 고객 자신을 위한 계획과 실행이 적극적으로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상담치료나 컨설팅 등의 다른 접근법이 유효할 경우, 혹은 정신적인 치료나 약물에 의한 치료가 필요할 경우, 코칭을 진행하지 않고, 상담전문가나 신경정신과에 의뢰하도록 돕게 되어 있다. 그런데 부탁한 고객의 상태는 공항장애와 우울증,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코칭을 진행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처음마음’을 다져가고 있던 나에게 이 고객은 파랑새같이 나에게 살포시 날아온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이 뜨거워졌고, 코칭으로 공항장애와 우울증, 대인기피증을 완치할 수는 없더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나에게 코칭을 부탁하며 미안해 하던 지인에게 나는 큰 미소를 보여주며 오히려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분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그렇게 나의 코칭 ‘처음고객’과 만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코칭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으스대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눈에 초점조차 흐릿한 ‘처음고객’ 앞에서 나는 겸손히 그녀를 응시하기만 할 뿐 나의 경력이나 학력에 대해 읊조리지 않았다.
삶의 무게와 가시밭길을 겨우 빠져나온 것 같은 고객님은 앉아 있는 것도 불안했고, 나와는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으며, 말하는 문맥은 상황과 전혀 맞지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하기가 그지 없었고, 치료를 받도록 권유하고 코칭을 접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비쳐지는 이면은 ‘마! 지! 막!’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코칭세션의 끝이 어떻게 끝날지 두려웠지만 코치로서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고, 같이 걸어가 주고 싶었으며 같이 울어주고 싶었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 지! 막!’을 이제부터는 ‘출! 발!’로 바꿔주고 싶었다. 그녀의 떨고 있는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고, 그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코치로서의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녀와 그렇게 3개월의 기간 동안 코칭세션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녀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자폐를 가진 아들과 변하지 않는 남편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열등감이었다. 오히려 경제적인 어려움은 이 세 가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자폐증을 앓는 아들의 돌발 행동과 이 아들의 자폐를 엄마 탓으로 돌리는 가족들의 멸시는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그로 인해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습관적으로 단절시켰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피해의식의 종착점은 ‘고졸’이라는 열등감이었다. 나는 3개월의 코칭세션이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그녀에게 희망을 찾게 하고, 꿈을 찾게 했다. 선배코치들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선배코치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의 상태에서 그 고객에게 꿈을 갖게 하는 것이 과연 공황장애, 우울증, 대인기피증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초보코치로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을 돈이 없었고, 코칭세션 때 그녀는 없는 살림이나마 큰 마음을 먹고 나에게 겨우 커피를 한잔씩 사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공황장애와 우울증,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무척이나 불안하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달려와 정확하게 약속시간을 맞추었다. 그녀는 매주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헤어지기 싫어하는 자폐성 장애 아들을 돌봄 서비스에 맡기고 달려와 주었다. 

진정 나를 위한 것!

그녀의 그 아름다움 모습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그 아름다운 모습에 나는 더욱 겸손해졌고, 그녀의 그 아름다운 모습에 나는 그녀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꿈’을 선물해 주었다. 너무 식상한 선물인가? 요즘은 꿈에 대해 워낙 많은 얘기들을 나누기 때문에 식상할 것이다. 광고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너나나나 꿈을 말하고, 기업이나 조직에서도 목표와 성취를 꿈으로 승화시킨다. 하지만 명백히 주장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꿈’은 그런 것이 아니다. 
‘꿈’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참 많이도 얘기를 하지만 ‘꿈’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는 많이들 모르고 있다. 대개 ‘꿈’이라고 하면 무엇인가를 성취하거나 좋은 직업이나 명성을 얻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는 것이 본질이다. 남을 위해 꾸는 ‘꿈’은 신성하며,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삶의 이유이자 가치가 된다. 이 쯤에서 의문이 들 것이다. 내가 꾸는 ‘꿈’이 왜 남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지…
내가 꾸는 꿈이니깐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내가 꾸는 ‘꿈’은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함이 맞다. 하지만 내가 꾸는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기 위해서, 또한 그 꿈으로 인해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을 위해 꾸는 꿈’이 되어야 진정한 나를 위한 것이 된다. 반대로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꾸는 것은 ‘욕심’이다. 왜 나만을 위해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면 ‘욕심’이 되어버리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그 이유는 간단하게 알 수 있다. ‘꿈’과 ‘욕심’의 시작과 끝을 비교하면 된다. 남을 위해 ‘꿈’을 꾸기 시작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열정이 생긴다. 그리고 먼 미래에 까지 계획을 하게 되고 지금의 상황에서 감사할 것을 쉽게 찾게 된다. 반면에 나만을 위해 ‘욕심’을 꾸기 시작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조급해진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까지 계획을 세우는 것에 부담을 갖고, 실패했을 때가 두려워져 지금의 상황을 평안하게 인식할 수가 없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계획하고 꿈을 꾸는 데에 있어서 표면적인 나만의 ‘욕심’을 꿈으로 착각한다. 부모코칭을 하다가 보면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부모 자신만의 ‘욕심’을 꾸고 그 욕심을 꿈으로 착각해 자식에게 강요를 한다. 자식은 그런 부모의 ‘욕심’을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부모는 채워지지 않는 ‘욕심’에 대해 자식에게 부담을 갖게 하고, 결국 자식과의 갈등과 소통의 부재로 괴로워한다. 그 원인을 보면, 부모는 자식을 위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만을 위한 ‘욕심’을 꾸기 때문이다.

자신만 위하는 ‘욕심’아닌 남 위한 ‘꿈’

나의 ‘처음고객’에게 나는 이 ‘욕심’이 아닌 ‘꿈’을 발견하도록 도왔다. 자신만을 위해 해결되어져야 하는 다양한 문제들(자폐성 장애 아들, 남편의 사업부도, 공황장애와 우울증 등)을 모두 뒤로하고 오로지 고객 자신이 아닌 세상을 위한, 남을 위한 ‘꿈을’ 꾸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3개월의 코칭 세션이 끝났을 때, 그녀는 아동보육전문가로서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이 공존하는 유아보육센터를 운영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장애아동들과 비장애아동들이 동등한 유아교육을 받으며 함께 성장하고 장애를 넘어서 서로 존중하는 법을 터득하는 교육을 발전시키는 ‘꿈’을 이루고자 했다. 
그렇게 5년 전 나의 ‘처음고객’은 진정한 ‘꿈’을 발견하였고, 지금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할 준비를 하며, 연구원 및 강사로 활동 중이시다. 그녀의 상황은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은 여전히 그녀의 돌봄과 관심이 필요하며, 빚은 여전히 갚아나가야 한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 외에도 그녀가 돌보아야 할 자녀가 2명 더 있고, 아직도 어리다. 하지만 그녀가 세웠던 남을 위한 진정한 ‘꿈’은 그녀를 빛나게 해주고, 그녀를 힘들게 하던 마음의 병들을 낫게 해주며,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있다.
세계의 저명한 인사들이 성공한 것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욕심’이 아니라, 남을 위한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모두가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을 위해 좋은 집과 좋은 차, 부유하거나 높은 지위를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의 유통기한은 그렇게 길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그 무엇의 충족이 유통기한이 지나고 나면 또 다시 허탈함과 우울감이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하지만 남을 위하는 진정한 ‘꿈’을 꾸게 되면 그것의 유통기한은 무통기한이다. 또한 내가 꾸었던 꿈을 이루고 나면 끝이 아니라 다른 꿈이 그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열정을 갖고 미래를 계획하게 되면 지금의 상황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은 유명한 연설 내용 중 하나이다. 그가 꾸었던 꿈은 자신만을 위한 ‘욕심’이 아닌 흑인이라는 ‘사람’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꿈’이었다. 그가 꿈을 꾸었기에 흑은 노예들은 해방될 수 있었고,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 실현되었다.
나는 5년 전부터 ‘꿈’을 꾸고 있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남기는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당신은 ‘꿈’을 꾸고 있습니까? 아니면 ‘욕심’을 꾸고 있습니까?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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