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B
    17℃
    미세먼지
  • 경기
    B
    15℃
    미세먼지
  • 인천
    B
    16℃
    미세먼지
  • 광주
    Y
    15℃
    미세먼지
  • 대전
    Y
    13℃
    미세먼지
  • 대구
    Y
    16℃
    미세먼지
  • 울산
    Y
    18℃
    미세먼지
  • 부산
    Y
    18℃
    미세먼지
  • 강원
    B
    13℃
    미세먼지
  • 충북
    B
    15℃
    미세먼지
  • 충남
    Y
    13℃
    미세먼지
  • 전북
    Y
    17℃
    미세먼지
  • 전남
    Y
    17℃
    미세먼지
  • 경북
    Y
    16℃
    미세먼지
  • 경남
    B
    미세먼지
  • 제주
    B
    미세먼지
  • 세종
    Y
    13℃
    미세먼지
최종편집2022-09-27 19:59 (화) 기사제보 구독신청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보여주는 대로 믿게 된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보여주는 대로 믿게 된다”
  • 박기환 전문위원 겸 에머슨케이파트너스 대표
  • 승인 2015.01.09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기환의 커뮤니케이션 경영전략]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스를 생각하며…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의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를 이룬다.”

대중을 자기도 모르게 복종하도록 만든 사람,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말이다.

18세기 계몽사상에서 시작된 과학, 이성, 진보의 힘은 19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체제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증기기관, 내연기관, 무선통신, 사진,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난 새로운 발명과 미국대륙횡단철도, 유라시아횡단철도, 대양 운송 철도와 기선의 출현으로 촉발된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업 사회의 낡은 체제를 파괴했고, 도시로 유입된 다수의 노동자 계층이라는 새로운 사회구조를 생성시켰다. 이 같은 변화는 사회적으로 전통적 생산 수단을 현대화하도록 강요(문화적 재생산을 차단)했고, 인구의 이동성을 높여 도시의 거대화를 초래했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모델이 끝없는 물질적 풍요를 약속했고, 언론, 상거래, 과학적 탐구의 자유, 노동의 유동성과 확대된 선거권에 기초한 민주적 자치에 대해 각성한 시대이기도 했다. 
발전된 생산력은 세계 인구를 크게 증대시켰는데, 1900년 당시 16억 3,000만 명에서 2000년 무렵 60억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산업화와 도시화,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대중의 의식 역시 크게 변화시켰고, 교육받은 중산층과 소수 기술 노동자 계층의 대두로 새로운 형태의 매스 미디어들이 등장했다. 이를테면 신문은 1700년대부터 소책자나 정보지 형태로 출발해 18세기에 이르러 일간지가 일반화되었고 1840년대에 대중잡지, 1920년대에는 라디오, 1940년대 텔레비전이 출현했다. 영국에서 대중적인 독자를 겨냥한 카툰 잡지 ‘펀치(punch)’가 창간(1843년)되었고, 사진 출현 등으로 인해 범람한 포르노그래피가 사회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그러나 전통적 지배계층은 간신히 문맹을 벗어난 대중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 한편으론 위기의식에 사로 잡혔다.

무지·무관심한 대중을 선출된 소수가 오도

당시 영국의 교육자이자 문화이론가 M. 아널드(Matthew Arnold)는 대중의 출현을 경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대충 교육받은 다수가 아닌,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소수가 항상 인류의 지식과 진실의 기관구실을 해왔다. 말의 뜻을 충분히 새겨보면 지식과 진실은 결코 인류의 대다수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때의 지배 엘리트들은 대중사회의 도래를 기존 사회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 요소로 보았다. 자유주의 사상가 밀(John Stuart Mill)과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역시 확대된 민주주의(보통선거)로 인해 수적으로 증가한, 그러나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한 대중을 선출된 소수가 오도해 민주주의가 변질되는 것을 새로운 전체주의적 횡포로 생각했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대중사회의 출현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사회주의는 대중을 각성시켜야 할 노동계급으로만 해석했고, 보수주의는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적대적 세력으로, 자유주의는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교육받은 시민들만을 진정한 정치 세력으로 인정했다. 이들 정치 세력은 모두 대중을 정치권력의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양한 층위와 욕망을 지닌 대중을 이념적 프레임으로만 파악한 기존의 정치 이념들이 놓친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파시즘이었다. 파시즘은 대중의 각성된 정치의식을 위험하게 여기거나 무시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반대로 대중이 지닌 보수성(대중은 무상계급의 자의식과 더불어 기존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보수 성향을 함께 지녔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회주의의 공백을 파고들었다. 자유주의는 파시즘에 대항할만한 세력과 대안을 조직화해내지 못했고, 보수주의는 사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손쉬운 정치세력으로 파시즘을 선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지배계급은 대중의 동의와 설득 없이 기존처럼 ‘좋은 집안 출신의 교육 잘 받은 사람들이 사회적 명성과 존경’에 의지해 ‘국가를 통치하려는 지배 방식’ 자체가 문제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로부터 좌우를 막론하고 민주주의를 정치 체제로 선택한 국가의 지배계급은 대중과 여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통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서는 더 이상 지배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PR의 아버지’ 또는 ‘정보조작의 대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바로 그런 시대에 태어나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국가와 지배 엘리트의 의지대로 대중을 ‘자발적 복종’의 길로 들어서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기초를 놓은 사람이었다.  

Big Think, 대중 인식과 행동 양식 변화시키는 PR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이 팔고자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광고(Advertising)가 아닌, 대중의 인식과 문화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바로 PR(Public Relations)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것을 알고 발전시킨 홍보 대행 사업의 선각자이다. 그가 홍보를 대행하면서 여러가지 전략을 구사했지만 구체적인 비즈니스 철학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행동 양식과 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추구했다. 이런 자신의 비즈니스 철학을 ‘큰 생각(Big Think)’이란 말로 즐겨 표현했다. 
프로이드의 심리학에서 영향을 받은 그는 대중의 무의식에 한번 뿌리 박힌 인식과 행동 양식은 언제나 사회적 통념, 즉 문화가 되어 오랜 세월을 두고 다른 의식의 도전이 없다면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버네이스의 ‘큰 생각(Big Think)’은 그의 선전 이론을 충실하게 따른 제자이자 독일의 선전상이던 괴벨스(Joseph Goebbels)에 의해 ‘큰 거짓말은 대중을 믿게 할 수 있다’는 말로 반복되기도 했다.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를 이룬다.” 이 말에서 엿보이듯 버네이스가 생각한 국가 권력의 진정한 지배자는 대중이나 평범한 시민이 아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정부는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대중의 의식과 습관을 지배하는 사회구조를 조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때문이다. 예를 들어 5,000만 명을 대상으로 광고를 내보려면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대중의 생각과 행동을 주도하는 지도자 집단을 설득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역시 엄청나다”며 젊은 공화국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자들이 누구인지 간파하고 있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국민 대다수의 여론에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독립선언 이후 실제로 미국의 정치를 지배하고, 이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거의 언제나 소수 지배 세력의 이해였다. 버네이스는 잡지와 연극의 성공을 위해 성 담론을 상업적인 자극제로 이용하면서도 한편으론 매독과 공중보건, 치료에 대한 논란을 대의명분으로 해 권위 있는 지지자들을 구한 경험을 평생 동안 활용했다. 이를 계기로 언론홍보 대행인(Press Agent)이란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된 그는 이후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연극 ‘키다리 아저씨’와 러시아 발레단 미국 홍보, 이탈리아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의 미국 공연 등을 성공적으로 만들면서 명성을 쌓았다. 
PR의 아버지, 에드워드를 생각하며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며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특히,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보여주는 대로 믿게 된다”라고…

▲ 박기환 에머슨케이파트너스 대표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