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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2-28 17:18 (수) 기사제보 구독신청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人文경영’ 전도사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人文경영’ 전도사로…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4.05.29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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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통업계 선두주자 신세계그룹이 ‘인문학’에 빠졌다. 업계 라이벌인 롯데그룹이 ‘아시아 TOP 10 글로벌그룹’이라는 기치 아래 외국어 능력을 우대하는 것과 사뭇 판이한 움직임이다. 이미 한국의 메디치 가문을 표방한 신세계그룹이 인문학을 경영 전면에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사람은 바로 정용진(47) 신세계 부회장이다.

Editor 박흥순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달 8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지식향연’의 첫 번째 주자로 강단에 올랐다. 이 날 강연에 앞서 ‘스펙’을 추구하는 여타 채용설명회와 같은 자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 부회장은 기조연설자리에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고 싶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한 기업의 CEO도 채용을 관장하는 면접관의 입장도 아닌 수평적인 위치에서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평소 정 부회장은 인문학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역사관련 서적이 가득 차 있고 정 부회장은 틈날 때마다 이 서적들을 즐겨 보곤 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애독서로 故김태길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꼽을 만큼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음악 분야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면 피아니스트가 됐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한 그의 성품은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 부회장의 어머니는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이다.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취미가 그림일 정도로 미술 전 분야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미술과 클래식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정 부회장은 자연스레 미술과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 회장 또한 정 부회장에게 “문화 예술을 알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훌륭한 경영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지난 2011년 플루티스트 한지희(35)씨와 결혼하게 된 배경도 평소 문화예술계 관계자들과 자주 교류를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명희 회장의 영향…“문화예술 알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정 부회장은 연세대 강연을 통해 신세계의 경영방침을 피력했다. 몇 해 전부터 신세계그룹은 인문학과 더불어 문화예술을 경영활동에 접목시켜 왔다. 최근에는 새로 선임된 수석부장들과의 대담 자리에서 독서를 강조하며 실무자들에게도 인문학과 경영의 조화를 주문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해 10월부터는 신세계 사내 방송에서도 인문학·경영·경제 분야의 책을 소개해 오고 있다. 전 직원의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겠다는 취지에서다.

정 부회장은 연세대 강연에서 인문학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열거하면서 “인문학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간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소양”이라고 답했다. 또 이 인문학이야 말로 신세계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기업’이라는 방향과 일맥상통한다고 보고 있다.

신세계가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한 것은 몇 해 전 부터다. 신세계의 주력 분야인 유통산업이 고리타분하고 변화와 거리가 먼 산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우려를 경계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때문에 유통산업에 인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을 접목해 한 사람의 생활양식·행동양식·사고양식을 폭넓게 아우르는 기업 활동으로 유통업계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이끌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유통업계 빅3 중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신세계는 인문학에 바탕을 둔 이 같은 변화를 통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발돋움하겠다는 차별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의미에서 연세대 ‘지식향연’을 통해 신세계그룹의 경영방향을 대대적으로 알림과 동시에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인재 선발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반 우후죽순 등장한 전국 각지의 대형할인 매장으로 인해 유통업은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기도 했다.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였던 시장은 10여년이 지난 현재는 각종 규제와 소비침체로 한풀 꺾인 모양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신세계의 색다른 행보는 시장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왜 강단에 직접 나섰나?

 

2009년 12월, 정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등장하면서 신세계그룹은 본격적으로 3세대 경영에 들어섰다. 정 부회장은 이명희 회장의 장남으로 신세계그룹을 이끌고 갈 차세대 리더의 첫 번째 주자다. 이런 그가 대학교정에서 열린 강연에서 직접 나서 기조연설을 할 만큼 신세계 그룹은 이번 ‘지식향연’을 중요한 이벤트로 여기고 있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가한 이후 1993년 이마트 창동점을 시작으로 할인매장 사업에 적극 투자, 국내 굴지의 유통그룹으로 도약했다. 다른 그룹들이 오너경영체제를 유지한 것과 다르게 신세계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해 왔다. 그야말로 ‘신세계’를 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나가던 신세계도 최근의 내수침체와 각종 정부규제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몇 년 새 고전을 면치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정 부회장이 직접 연단에 선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의 현장경영이라 할 수 있다.

유통업은 다른 업종과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 특히 신세계그룹의 엔진이라 할 수 있는 이마트의 경우 소비자와 직접 대면을 통해 영업을 해야 하는 관계로 관리보다 현장경영이 더 중요한 업종이다. 하지만 그간 신세계그룹 오너일가의 행보는 다른 제조업 기업과 같은 움직임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삼성 이병철 선대회장의 막내딸인 이명희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자녀들 중 가장 아버지의 경영스타일을 닮았다는 평을 받곤 한다. 게다가 제조업을 발판으로 도약한 삼성그룹의 특성은 유통사업에 잘 맞지 않는다는 관점도 있었다. 이런 신세계의 약점을 타개하기 위해 정 부회장이 직접 강연의 기조연설을 담당했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CEO의 현장경영을 대내외에 과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타이밍이 참 묘(?)했다. 일부러 이렇게 날을 잡으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필이면 경쟁업체 롯데쇼핑 대표인 신헌 사장이 롯데홈쇼핑 납품비리로 지난달 14일 검찰 수사를 받았다. ‘지식향연’이 성황리에 막을 내린 바로 다음 주였다.

이 때문에 신세계가 지식향연을 통해 누리고자 했던 점들이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다는 우스개 소리마저 들린다. 신세계가 사회적인 기업, 인문학을 중시하고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준비한 행사와 맞물려 경쟁업체의 이미지 추락이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기업의 향후 판세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안개 속에 빠졌다. 롯데쇼핑이 이번 사건으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긴 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저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바통은 신세계그룹으로 넘어갔다. 이번 ‘지식향연’의 성공을 바탕으로 해묵은 그룹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이고 깨끗한 기업 이미지를 갖춰 나갈지, 아니면 단순히 매년 20억 원을 강연에 투자하는 기업에 머물지는 신세계그룹의 다음 발걸음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것이 신세계그룹의 행보에 눈길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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