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의 상술 DNA에 뿌리박힌 “중국인은 하나” …‘꽌시 비즈니스’
화상의 상술 DNA에 뿌리박힌 “중국인은 하나” …‘꽌시 비즈니스’
  • 한상오 기자
  • 승인 2014.03.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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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의 비즈니스 원칙

전 세계 4800만명의 ‘화상’은 ‘주식회사 중국’의 가장 든든한 돈줄이다. 화상들은 전 세계가 ‘차이나 리스크’ 때문에 주저했던 개혁, 개방 초기부터 고국인 중국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이들의 이런 위험을 감수한 투자를 단지 애국심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 이미 100여년이 넘게 타국에서 온갖 힘든 일을 감수하며 자본을 모은 화상들이 중국에 투자할 때는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이들의 비즈니스 원칙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상술에 이골이 난 민족으로 유대인을 꼽는다. 미국의 월가를 장악하고 세계 경제를 요리하는 게 유태인과 그들 자본이기 때문이다. 아라비아의 상인도 그에 빠지지 않는다. 사막을 가로질러 목숨을 걸고 낙타와 함께 장사를 해온 민족이다. 그들이 장사 셈을 헤아리기 위해 아라비아 숫자를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유대인과 아라비아 상인과 견줄 수 있는 것이 중국 상인인데 이들은 당(唐)나라와 원(元)나라를 거쳐 청나라 몰락까지 오랜 세월 유럽까지 실크로드를 깔았다. 그리고 세계시장을 누비며 일류상품 비단, 도자기, 차(茶)를 공급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열악한 환경과 고난을 질기게 이겨 온 역사와 공간의 극복에 있다. 유태인은 나라를 잃고 2000년 가까이 세계 곳곳으로 떠돌이 생활을 했다. 중국 상인 역시 그렇다. 상인이나 상업이란 말도 원래 상(商)나라로부터 비롯되었다.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토벌하자 천하는 주나라가 되었고 상나라 사람들은 세상을 누비면서 장돌뱅이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동남아시아 그리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 돈 주머니를 꿰차고 있는 6000만명의 화교들 핏속에는 상나라 사람들의 유전자가 숨 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血緣, 地緣, 業緣, 神緣, 物緣…‘5대 연분’ 네트워크

중국 상인의 성공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관계와 인연을 중시하는 ‘꽌시 비즈니스’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철저한 현지화’와 ‘만만디’라 일컬어지는 느긋한 협상술을 들 수 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4800만명의 화상들은 나름대로 5가지의 중요한 연분에 기초해 ‘꽌시 비즈니스’를 풀어낸다. 자세히 풀어본다면 이 5개의 연분은 혈연, 지연, 업연(같은 업종), 신연(같은 종교), 물연(같은 상품 취급) 등이다. 이들은 이 5가지를 중심으로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

이런 연분으로 뭉친 화상의 힘은 단순한 경제력을 넘어선다. 1980년대 세계를 휩쓸었던 일본 기업들이 유독 동남아시장에서 예상 밖으로 고전한 것도 화상 네트워크의 결속력 때문이었다는 평이다.
중국 화상들의 특징으로 ‘가족 경영’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그동안의 화상들이 만리타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이었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시에서 북서쪽으로 30분 떨어진 한 마을. 이곳 시장의 중심가에는 100년째 이어져온 잡화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가게 주인은 숭친신씨. 그는 할아버지가 중국 광둥성을 떠나 말레이시아에 정착했지만 아직도 중국어가 더 편한 화교이다. 이곳 대부분의 화교 상점이 그렇듯이 이 가게도 숭씨 가족들의 손으로 운영되고 있다. 100여 년 전 가난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화교들이 의지할 사람은 가족들과 화교 이웃들뿐이었다. 부모 세대부터 한 가족처럼 지내며 신용을 지켜온 이들의 상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랜 이민 역사를 통해 현지 적응에 성공한 화교들은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끈끈한 협력 관계를 강화해 왔다. 화상들은 이 같은 특유의 적응력을 앞세워 이곳 시장의 도소매업을 장악하고 있다. 
상업을 중시하는 특유의 가치관, 이민자로서 현지에 적응하면서 몸에 배인 돈에 대한 강한 집착은 화교 상인들이 지닌 공통점이다. 어릴 적부터 가게 운영을 도우며 부모 세대의 상술과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화교들이 부자를 꿈꾸는 것은 당연할 일일 것이다.
싱가포르 최대 간장 제조업체를 이끌고 있는 토마스 펙 사장은 할아버지가 창업한 공장을 이어 받아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가업을 계승해 정상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펙 사장은 혹독한 경영 수업 방식을 거쳤다. 이 간장공장은 싱가포르 내수 시장에서 점유율 70%를 차지하며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토마스 펙 사장이 오늘날 이런 기업을 키울 수 있던 비결은 ‘가족경영’에 있다. 그는 “할아버지 명령으로 바닥을 쓰는 일부터 항아리 닦는 일까지 아래 직원들이 하는 힘든 일부터 시작했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모든 부서의 잡일부터 배우기 시작했던 게 경영을 하면서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창립 초기부터 회사 경영은 혈연 중심으로 이뤄졌다. 현재도 펙 씨의 누이와 동생 등 여섯 남매가 회사의 중책을 맡고 있다.
이렇듯 가족 경영은 화상들이 거주지에서 적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터득한 사업방식이다. 이민 초기 소규모 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감한 정세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최근 직원 수가 늘어나는 등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경영 방식은 변화하고 있다.

 업종이 같으면 서로 지켜주며 협력

200년 가까운 화교 이민역사를 지닌 싱가포르. 동남아 화교들이 중국을 왕래할 때 싱가포르항을 경유하면서 자연스럽게 화교들의 중심지가 됐다. 이곳에는 건물마다 내걸린 종친회와 동향회 간판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이민 초기 화교들이 어떻게 현지에 적응하려 했는지를 보여준다. ‘방’이라고 불린 이런 조직은 해외에 이주한 화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준 것일까? 
1944년 창립한 토마스 펙 사장의 간장공장은 무일푼으로 이민 온 펙 사장의 할아버지가 종친회원들로부터 자금을 빌려 회사를 세웠다. 이렇게 종친회나 동향회는 갓 이민을 온 중국인들이 생존을 위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중요한 장소였다.
종친조직, 동향집단 등 혈연과 지연으로 얽힌 네트워크는 화교 사회에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민 1세대가 척박한 타향에서 생존을 위해 형성한 끈끈한 네트워크는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아 있다. 조상들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화교 후손들은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네트워크를 쌓아가며 경제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화상들의 또 다른 특징은 같은 업종 종사자들 사이의 강한 결속력이다. 한국 기업의 경우 동종업체 사이의 과열경쟁으로 결국 함께 손해를 보는 사례가 많지만 화상들은 서로 영역을 지켜주며 협력을 중시하는 전통이 매우 강하다.
이렇게 같은 업종의 종사자들이 모여 한 소리를 내는 것은 서로 입장이 다른 각 기업 간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정부 또는 다른 기업이나 업종과의 교류와 접촉을 통해 각종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 화상은 “성씨를 따른 종친회가 있듯이 말하자면 우리 협회는 성이 식품인 사람들의 종친회와 같은 셈”이라며 “식품을 생산하는 사람들끼리 동질감이 있어 안전감을 느낄 수 있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관계가 성립된다” 말했다.
이민 1세대부터 이어온 끈끈한 네트워크를 이용해 사업을 확장해 온 화교기업인들은 같은 사업을 하는 동료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가족만큼 소중한 협력자인 셈이다.

 타문화와의 조화?적응력 탁월…국경 초월한 비즈니스 확장

혈연과 지연, 업종별로 뭉치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화상들의 움직임은 국경을 넘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세계화상대회 창설은 국제적인 화교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화상대회에 참가하는 화교들은 민감한 정치적 주제를 논하기보다는 주로 사업상의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들며 사업하는 화상들이 국제적으로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북미 화교의 거점인 캐나다 밴쿠버 시는 화교 자본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캐나다 내 화교 100만명 중 40만명이 밴쿠버 인근에 밀집해 있다. 특히 80년대 후반부터 홍콩계 이주민이 급증해 이제 밴쿠버는 ‘홍쿠버’라고 불릴 정도이다.
밴쿠버 시내 한가운데에는 차이나타운이 자리를 잡고 있다. 미주 지역에서는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이곳은 관광명소이면서 화교들에게는 자신들의 전통과 정체성을 보존해 온 의미 깊은 장소이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한 건물에는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19세기 중반 철도 노동자로 캐나다에 들어와 차별과 역경을 이겨낸 화교들의 자부심을 담고 있다.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중국문화원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자 교육이 한창이다. 예닐곱 살 먹은 어린이들이 서툰 솜씨로 붓글씨 쓰기에 열중하고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캐나다지만 중국 출신이라는 뿌리를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다. 
이곳 문화원은 30년 전 이민자들에게 중국 문화를 계승시켜야 한다는 취지에서 세워졌다. 캐나다 화교들은 문화원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중국인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있다.  
문화원 강당에서 노인들이 태극권 수련에 한창이다. 유연하면서도 느린 동작이 호흡과 조화를 이루는 태극권은 화교 노인들 사이에 널리 보급돼 있다. 이민자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 만나 교류함으로써 동질감을 유지한다.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의식, 이는 ‘꽌시’라고 불리는 중국인 특유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밴쿠버에 굳게 뿌리 내린 화교들의 상권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페어 차일드 그룹도 그중 하나. 이 기업의 회장인 토마스 펑은 홍콩에서 태어나 지난 1967년 캐나다로 건너온 이민자이다. 미디어, 부동산, 유통 등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그는 현지 유력 언론으로부터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대표적인 화교 사업가이다. 
펑 회장이 지난 몇 년 사이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TV, 라디오 등 미디어 사업. 현재 2개 텔레비전 채널과 5개 라디오 방송을 소유하고 있다. 최근 8개 디지털 텔레비전 채널 사업권도 획득했다. 캐나다에 있는 중국계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중국어로 방송한다. 이민국에 뿌리 내린 화교들이 언어와 전통 문화를 잊지 않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펑 회장은 특히 젊은 화교 세대들에게 중국 고유문화를 전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동시에 그는 화교 사회의 고유한 문화가 캐나다 주류 문화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세심한 경영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다 많은 화교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화교들의 성공은 경제 분야에 국한하지 않는다. 더 큰 성장을 위해 주류사회 에 대한 편입을 시도해 이미 많은 화교들이 정치, 행정 분야에 진출했다. 화교들은 캐나다 전체 인구의 3% 정도에 불과하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그 이상이다.
어릴 적부터 집안일을 도우며 익힌 상술을 바탕으로 화교들은 이민 초기 어려움을 이겨냈다. 화교 상인들은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척박한 타향에서 이민 1세대의 노력으로 쌓은 경제적 부는 중국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더욱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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