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코리아=손민지 기자] "여기저기 익명으로 기부를 많이 하려고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월 구미 삼성전자 스마트시티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하는 임직원들을 만나 한 말이다. 익명 기부를 예고해온 이 회장이 실명을 공개하고 억대 기부금을 쾌척해 이목을 끌고 있다. 그 대상은 바로 호암재단이다.

지난해 유일한 '개인 기부'...삼성전자는 42억원 '쾌척'

25일 국세청 공익법인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이재용 회장은 호암재단에 2억원을 기부했다. 호암재단은 학술·예술·사회 발전과 복지 증진에 기여한 한국계 인사를 포상하는 공익법인으로 1997년 설립됐다. 지난해 이 재단의 총 기부금은 52억원인데, 개인 자격으로는 이재용 회장이 유일한 기부자였다.

기업 자격으로는 삼성전자가 42억원으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냈고 삼성디스플레이(3억원), 삼성SDI·삼성전기·삼성SDS(각 1억원), 삼성증권(6000만원), 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각 5000만원), 삼성에스원(2000만원) 등도 기부에 동참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실명으로 호암재단에 기부금을 전달한 것을 두고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불과 몇 개월 전 구미 삼성전자 스마트시티에서 "봉사에 적극 참여하고 싶은데 얼굴이 알려진 탓에 쉽지 않다"며 익명 기부에 대한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호암재단에 기부를 한 것은 2021년(4억원)에 이어 두 번째다.

호암 이병철 '인재제일' 정신, 손자가 물려받아

평소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는 이 회장의 '미래동행' 철학이 학술·예술·과학 분야까지 퍼지는 모습이다. 이는 호암재단의 지향점과 연관이 있다. 1997년 설립된 호암재단은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인재제일 및 사회공헌 정신'을 후대에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단체로, 이곳의 기부금은 인재 육성에 주로 쓰인다. 호암재단은 크게 ▲삼성호암상 운영 ▲학술 및 연구사업지원 ▲호암생가 개방 및 운영 등의 사회공익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이건희 선대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듬해인 2015년부터 삼성호암상을 챙겼다. 삼성호암상은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과학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호암상은 ▲과학 ▲공학 ▲의학 ▲예술 ▲사회봉사 등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글로벌 리더를 선정해 시상한다. 특히 과학상은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산업 생태계 기초가 단단해지고 국가 경쟁력 역시 높아질 수 있다"는 이 회장의 제안에 따라 2021년부터 물리·수학부문과 화학·생명과학부문 등 2개로 분리 확대 개편됐다. 이 회장이 국가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삼성호암상의 '레벨 업'에 나선 셈이다.

이 회장은 2017년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참석하지 못하다 6년 만인 지난해 다시 호암상 시상식을 찾았다. 재계에서는 올해 이 회장의 참석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이 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이던 지난해 5월 31일에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직접 참석한 바 있다. 어머니인 홍라희 여사와 동반 참석 가능성도 거론된다. 홍 여사는 지난해 10월 LG아트센터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팬으로 알려져 있는데, 올해 호암상 예술상 수상자로 조성진이 선정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