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코리아=손민지 기자] “한화의 방산 분야 사업을 ‘한국판 록히드마틴’으로 키우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오랜 숙원이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에 의해 실현될 전망이다. 올해 4월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 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며 한화가 ‘육·해·공 통합 시스템’을 갖춘 기업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김 회장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추진이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무산된 후 15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한화는 ‘2030년 글로벌 톱10 방산 기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김 회장이 2014년 말 삼성의 화학‧방산분야를 통째로 인수합병하는 ‘빅딜’에 성공하며 종합 방산기업의 초석을 다진데 이어 장남인 김 부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중심으로 그룹 방산 사업 구조 개편을 차곡차곡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록히드마틴과 한화, M&A로 성장 '닮은꼴'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대한민국 해군이 추진하고 있는 첨단기술 기반 해군 청사진인 ‘스마트네이비’에 발맞춰 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차세대 구축함, 호위함, 잠수함 등 특수선 부문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이 때문에 한화가 대우조선의 해상 방산 역량까지 흡수한다면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시각이 많다. 주로 정부가 고객인 방산 시장에서 한화는 육·해·공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유연하고 폭넓은 영업활동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화그룹과 대우조선이 각자의 고객 네트워크를 공유하며 낼 수 있는 시너지도 클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약 2조 원 규모 유상증자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절반인 1조원을 담당한다.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한화는 대우조선 지분 49.3%와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는데 사실상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아래 대우조선이 놓이게 되는 셈이다.

한화 관계자에 따르면 김동관 부회장은 평소 국방력 강화와 미래 방산·우주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야심이 커,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미래 투자가 꾸준히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김 부회장은 공식석상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임원진에게 당부한다.

록히드마틴은 세계 최대의 방산 업체로 미 공군의 주력 스텔스 전투기인 F-22와 F-35를 생산한다. 1912년 설립된 항공 기업인 록히드와 1961년 만들어진 미사일 전문 기업 마틴 마리에타가 1995년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록히드마틴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해 왔다. 1996년 로랄과 유니시스의 방위산업 분야를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고 2015년에는 공격용 헬기 블랙호크와 대통령이 타는 헬기 마린-원 제조사인 시코르스키를 80억 달러에 인수했다. 시코르스키를 품에 안으면서 전투기·미사일·통신위성뿐 아니라 군사용 헬리콥터 부문까지 사업 영역이 확대됐고, 업계 2위 보잉과의 격차를 벌리며 세계 최대 방산업체로서 위상을 굳혔다.

1952년 설립돼 올해 창립 71주년을 맞은 한화 역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했다. 여기에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한화 리더 특유의 DNA가 작용했다.

김종희 창업주는 제일화재·대일유업을 인수하고 경인에너지·태평개발·서울프라자호텔 등을 설립했다. 1981년 29세 나이로 총수직을 물려받은 김승연 회장은 1992년 빙그레 계열분리에도 불구하고 방산·화학·기계·관광 분야 회사들을 품으며 한화를 국내 재계 10위권에 진입시켰다. 1982년 한양화학을 인수한 이후에는 제조와 금융, 서비스, 태양광산업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한화는 2014년 11월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과 삼성탈레스(현 한화탈레스) 등 삼성그룹 산하 4개 계열사를 인수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 한화는 2015년까지 자산규모 기준 국내 재계 기업 순위 13위였으나 이듬해 8위로 뛰어올랐고 2019년부터는 7위를 유지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현황에 따르면 한화의 자산 규모는 83조원인데 자산 12조3000억원(37위)의 대우조선 인수가 마무리 되면 그룹 자산 규모가 100조원에 육박한다.

'김동관 체제' 가시화 입증

1983년생인 김 부회장은 최근 그룹 대표 자격으로 잇따라 공식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며 외부에 차기 총수로서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특히 경영 성과 부문에서 한화의 최근 10년 성장사의 주역이란 평가를 받는다. 2010년 차장 직급으로 그룹에 입사한 그는 2011년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을 맡으며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태양광으로 낙점하고 이를 주도했다. 2013년 8월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으로 임명됐을 당시 삼성과의 화학·방산 4개 회사 빅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회사 안팎에서 '후계자'로 자리매김 했다. 상무·전무·부사장·사장 등을 거치면서 태양광을 넘어 에너지·소재 전반에 영향력을 키웠다.

그는 ㈜한화·한화솔루션·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주요 계열사의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며 한화의 미래사업인 신재생에너지와 우주항공, 방산 사업 등을 총괄하고 있다. 특히 2010년 그가 그룹에 입사했을 때부터 맡아온 태양광 사업은 한화의 핵심 사업으로 부상했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한 야심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김 부회장이 아버지에 이어 한국판 록히드마틴을 꿈꾸는 것은 오너 3세 경영 체제가 가시화 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이번 대우조선 인수로 한화가 조선업까지 무대를 확장하면서 김 부회장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김 부회장은 대우조선 인수작업을 마무리한 후 한화오션의 비상무이사로 합류한다. 그룹의 조선·방산 역량 강화 및 수소·암모니아·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전반을 관장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GS·HD현대와 재계 7~9위를 다투던 한화는 포스코·롯데 등과 '5대 그룹'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기업으로 한 단계 성장할 것”이라며 “대내외적으로 본인의 능력을 입증한 김 부회장 역시 승계작업에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분석했다.